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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언어학에서 사용하는 이 말은 말의 어원을 따진다는 의미의 'diachronicity'의 반대말입니다. 그리스말 그대로 보면 같은 시간이라는 말인데 모든 시간에 공통한다는 의미의 공시성(共時性)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칼 융이 사용해서 유명하게 된 이 말은 동양 사상을 학습한 융이 깨달은 자 또는 신비가들의 의식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란 존재하지 않고 높은 끌개장에서는 한꺼번에 보이지만 보통 사람이 처하고 있는 낮은 끌개장에서는 마치 원인과 결과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호킨스는 "두 사건의 '연관'은 관찰자의 의식 세계 내에서만 일어난다. 관찰자는 하나의 연관성을 '바라보고' 그 관계를 가정하며 '짝을 이루는' 사건을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는 관찰자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다. 이 우주에는 눈에 보이는 어떤 필연적인 사건이 존재할 필요성이 있지 않다...따라서 눈 앞에 현현하는 우주 전체는 동시적인 표현이며 경험 그 자체이다(의식혁명 p215)."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화엄경에서 얘기하는, 法界性은 一切唯心造라는 말과 통합니다. 법계 즉 우주의 본성은 모두 의식으로 되어 있음을 보는(觀) 경지에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주의 본성으로서 의식이라 함은 융의 '집단 무의식'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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